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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누가 끝을 보았나 - 이상백 -
물이 넘칠 때도
지금
물이 물로 이어지고
우리들 중에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송이 없는 맑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金宗三)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누나의 얼굴
- 윤동주 -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공장에 간다
누나의 얼굴 공장에 간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한참 지면
집으로 온다
누나의 얼굴 집으로 온다.
- 오일도 -
검젖은 뜰 위에
오늘도 나는 비 들고 언제나 이 비극 끝이 나려나!
검젖은 뜰 위에
누룩 - 이성부 -
누룩 한 덩어리가
오가는 발길들 여기 멈추어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지가 죽어 썩어 문드러져
아 지금 감춰둔 누룩 뜨나니.
누항요(陋巷遙) - 신경림 -
이제 그만둘까보다, 낯선 곳 헤매는 오랜 방황도. 황홀하리라, 잊었던 옛 항구를 찾아가 발에 익은 거리와 골목을 느릿느릿 밟는다면. 차가운 빗발이 흩뿌리리, 가로수와 전선을 울리면서. 꽁치 꼼장어 타는 냄새 비릿한 목로에서는 낯익은 얼굴도 만나리,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리리. 이내 어둠은 옛날의 소꿉동무처럼 다가오고, 발길 따라 깊숙한 골목 여인숙 찾아 들어가면 눅눅하고 퀴퀴해서 한결 편해지는 잠자리. 꿈인 듯 생시인 듯 들리리, 네가 가 잠들 곳 또한 이같이 익숙한 곳 편안한 곳이라는 소리가, 먼데서.
눈(雪) - 허 유 -
내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그리고
도회(都會)의 눈은 고향의 눈 보다는 품질(品質)이 못하지만,
문득, 십년(十年)째 죽어 있는 친구 하나
눈 - 구르몽 -
시몬, 그대 손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불꽃의 입맞춤으로 받아 녹는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 쌓여서 슬프다.
시몬, 그대 동생인 눈은 안뜰에서 잠잔다.
눈 - 신대철 -
자운영꽃이 꼭꼭 숨어 핀 풀숲을 헤맸어. 자운영꽃 같았어. 풀뱀이었어.
눈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눈 - 신동집 -
아주 너를 떠나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펑펑 눈이 오는 밤이었다.
눈 - 백학기 -
눈이 내리는가고
눈길
눈 길
눈길속의 카츄샤 - 박봉우 -
어느 집을 갈거나 어느 집을 갈거나 푸른 하늘이 나에게 준 이 길을 밟고
달밤이 아니라도 좋아라 별이 나지 않아도 좋아라 해바라기 무거운 목을
캄캄한 무덤에서 부활한 소복한 내가 되어 오늘만은 피를 토할 슬픔,
하얀 길. 하얀 벌판을 밟고 무한한 지평선에 흰 비둘기 나래의 깃발이
달밤이 아니라도 좋아라 별이 나지 않아도 좋아라 푸른 하늘이 나에게 준
자꾸만 가는 길 달밤보다 흰 벌판에서 붉게 피어버린 꽃처럼 울어나
밤늦도록 꽃초롱이 켜진 집을 찾아서 푸른 하늘이 나에게 준 이 길을
눈물
더러는
흠도 티도,
더욱 값진 것으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눈물사위 - 문형렬 -
눈물에 대하여 - 김세완 -
눈물은 눈물끼리
그리하여 부르면 대답하는
- 함민복 -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보라
연기 낀 오막도
돌아서면 허허벌판
있는 것은 다 버리자
눈보라 싣고 지금 어디로 굴러가나
눈바람 - 김양식 -
내가 펄펄 쏟아지는 흰 눈발에
먼 발치에 네 집 바라뵈는 고갯길을
너는 벌써 날 앞질러 눈바람 나서
천년 푸르른 솔나무 위를
눈이내리느니 - 김동환 -
북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 회색 하늘 속으로 흰 눈이 퍼부을 때마다 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북조선이 보이느니.
가끔 가다가도, 당나귀 울리는 눈보라가 막북강(漠北江)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 추위에 얼어 떠는 백의인(白衣人)의 귓불을 때리느니.
춥길래 멀리서 오신 손님을 부득이 만류도 못하느니. 봄이라고 개나리꽃 보러 온 손님을 눈발귀에 실어 곱게도 남국에 돌려보내느니.
백웅(白熊)이 울고 북랑성(北狼星)이 눈 깜박일 때마다 제비 가는 곳 그리워하는 우리네는 서로 부둥켜안고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 얼음 벌에서 춤추느니. 모닥불에 비치는 이방인의 새파란 눈알을 보면서
북국은 추워라, 이 추운 밤에도 강녘에는 밀수입(密輸入) 마차의 지나는 소리 들리느니. 얼음장 깔리는 소리에 쇠방울 소리 잠겨지면서
오호, 흰 눈이 내리느니 보-얀 눈이 북새로 가는 이사꾼 짐 위에 말없이 함박같은 눈이 잘도 내리느니.
눈 오는 날 - 조상기 -
오늘도 내 어린 동심은
어둑한 종소리에
가랑잎 밟고 오던 기억이 아파
얼마나 큰 무지개를 잡으면
여름내 무성했던
오늘도 내 어린 동심은
눈오는 밤에 - 김용호 -
오누이들의
콩기름 불
파묻은 불씨를 헤쳐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다만 이제 나 홀로
오우버 자락에
오누이들의
눈은 내리네 - 박용철 -
이 겨울의 아침을
저 눈은 너무 희고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눈은 내리어
눈꽃 - 김상배 -
첫눈 내린 날
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이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 한용운 -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 한하운 -
하늘과 땅 사이에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호적도 없이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착하고 겸손하고.
이 나랏 사람은
외로웁고 쓸쓸하고
나는 왕이로소이다. - 홍사용 -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러하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 은 “맨 어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 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이어 주신 어머님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님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발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 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에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 나흗날 밤, 맨재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게 놀리더이다, 모가지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둑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련(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나는 사랑이었네라 - 권국명 -
나는 피였네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배경란 -
그러나 나는 두려워 죽을 수도 없어요
삶과 죽음 속에
나는 깊이깊이 잠들고 싶어요
나는 천 줄기 바람
- 인디언 전래 시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압니다.
내 무덤 앞에 서지 마세요
나는 그 곳에 없습니다
나는 불어대는 천 개의
나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나는 새들의 날개 받쳐주는
내 무덤 앞에 서지도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개울물 소리 졸졸 거리면 더 좋을거야
삐걱거리는 허리 쭉 펴보며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아주 연한 헤즐럿을 내리고
해가 높이 오르고
나, 나 , 늙으면 당신과 함께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어 울고 싶어
겨울엔 백화점 가서
봄엔 당신 연베이지 빛 점퍼 입고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그리고 서점에 가는거야
나 늙으면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 - 조종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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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 - 성춘복 -
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
어둠에 밀렸던 가슴
나를 떠나보내는 언덕엔
밤마다 찢겼던 고뇌의 옷깃들이
강물에 흘렸던 마음이
강 너머엔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당신은 행인
나무
유성(儒城)에서 조치원(鳥致院)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修道僧)일까. 묵중(默重)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조치원(鳥致院)에서 공주(公州)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於口)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過客)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公州)에서 온양(溫陽)으로 우회(迂廻)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문(門)을 키는 파수병(把守兵)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溫陽)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默重)한 그들의. 침울(沈鬱)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나무
나무 - 김윤성 -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한결같은 망각 속에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나무 - 최영철 -
그러므로 나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 나무 이외의 뜬구름도
그러나 나무들은 가만히 서 있지 않다
나무가지 사이로 흐르는 바람 - 이은경 -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나무에게 - 박일 -
시간은 더듬거리며 찾아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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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라 나무여
3
잠시 빈 손으로
나무 안의 절 - 이성선 -
나무야
나무와 마음 - 이은상 -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
꽃피고 잎 퍼져 향기 피우며
찬서리 눈보라 휘몰아 처도
나무와 사람들 서로 도우면
- 송향섭 -
봄을 견디다 못해
넓고 푸른 자유를 향해
나무 끝에 막혀
얼마나 답답했으면
나비 - 유경환 -
나래를 쳐라 나래를 쳐, 청산가는 나비 훨훨훨 벌 지나 남빛 강 건너 또 계곡을 날고. 나래 아프면 청무우밭 쉬고 나래 지치면 절벽을 찾고 나래 부러지면 남빛 강에 떨어져 죽고... 나래... 그 부드러운 나래 한 쌍으로 하늘치며,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나비의 꿈, 눈부신 햇덩이 훈장으로 붙이고 하늘로 녹아 버릴 나비의 가슴. 비바람 가려서 달밤을 날고 달밤을 나를 땐 전설 꽃무늬, 노을 속 지날땐 불꽃무늬, 남빛 강 건널 땐 청동무늬, 모래처럼 쏟아진 별무리 밤하늘이 흘리고 간 나비의 유언.
끝없는 잠, 숨 죽은 밤 하늘 어디서든지, 반드시 고운 여인 하나 뉘 시켜서 아니라 스스로 그 작은 목숨 걸고 나래치는 아름다운 넋 풀잎에 이슬지듯 소리도 없이 남 몰래 나래치며 사라질 너, 너에게 끝 있음을 노래 부르고 나에게도 끝 있음을 노래 불러라. 나래를 쳐라 나래를 쳐, 청산가는 나비 훨훨훨 벌 지나 남빛 강 건너 또 계곡을 날고 청산에 불 붙으면 나래에 불 당기고 불보래 속에서 나래를 쳐라.
나비
찢긴 나래의 맥이 풀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재주도
나비와 광장
- 김규동 -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 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기계처럼 작열한 작은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寡默)한 묘지 사이사이 숨가쁜 Z기의 백선과 이동하는 계절 속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에 밀려 이제 흰나비는 말없이 이지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
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 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
신도 기적도 이미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 또 한 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 본다.
- 정한모 -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 깜깜한 절벽(絶壁)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阿鼻叫喚)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戰爭)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나부 - 장윤우 -
벗긴 채 양접시 위에
난로 위에선
뒤채는 누드의
흰 겨울에
나사.1 - 성찬경 -
길에서 나사를 줍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
나의 방 - 배인환 -
전세집을 얻었을 때도
집을 샀어도 내 방은 없다.
아내가 세금을 내러갈 때
셋방을 주면서도 내 방은 없다.
나의 시 - 이형기 -
나의 시는 참으로 보잘 것 없다.
흐르는 실개천
또는 해질 무렵 산허리에 어리는
아, 보랏빛 안개 서린 희노애락
일모와 더불어 귀로에 오르는
외로운 사람의
여류한 세월에 물같이 흐르는
나의 손 - 황명걸 -
서른 하고도 넷
나의 침실로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마돈나'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마돈나'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마돈나'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촉(燭)불을 봐라.
'마돈나'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 곳 가까이 오도다.
'마돈나'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마돈나'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마돈나'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마돈나'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마돈나'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나의 형상 - 박이도 -
밤사이
이른 아침 뜰에 나서면
아, 밤사이
이 아침의 밝음을 두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의 하나님
나하나 꽃피어 - 조동화 -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낙골 산동네 101번 종점 - 고광현 -
더 이상 뿌리 내릴 곳 없어
눈물겨운 사람들
팍팍한 가슴
젖어가는 세상
낙서가 된 앗시리아의 벽화 - 이활 -
애정에 괸해서
홍소처럼
그때도
낙엽 - 구르몽 -
낙엽은 너무나도 부드러운 빛깔, 낙엽은 너무나도 연약한 땅 위에 흩어져 있다!
황혼 무렵 낙엽의 모습은 너무나도 서글프다.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오라.. 우리도언젠가 낙엽이 되리라.
시몬, 나무 잎이 저버린 숲으로 가자.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상냥하고, 모습은 쓸쓸해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저녁 나절 낙엽의 모습은 쓸쓸해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서로 몸을 의지하리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 이난오 -
떠나 보내는 빗길이 아프게 젖어있다
지난 여름에 푸르던 추억을 접고 있다
낙엽(1) / 博川 최정순
개밥풀꽃 핀 듯 적단풍 버릇처럼 취하여 앵도라진 붉은 입술 중심 잃은 몸둥이 꿈틀대고
낙하하며 세상을 씹어대며 넘어지고 자빠져 시체처럼 포개지고
치기어린 항거도 거두지 못할 흑빛 무덤도 부질 없는 인사만 겹겹이 쌓여져 죽음의 그림자에 쫏겨 절망 아래 널브러진다
여명 고개 드는 새벽 안개 덮인 계단 내려서니
소복소복 낙엽 진영 모두 날개 잃고 누웠네
밤새 먹빛 여의도록 달도 별도 울고
황금기 찬란한 전설 서릿발 아래 차갑기만 한데
사납게 흘러가는 세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어디론가 흩어진다.
낙엽끼리 모여산다
낙엽에게 - 이희철 -
떨어져 가야 하는 까닭을
마치 층계를 내려가는
공간은 너의 뒤에서 하나 둘 제 위치를 마련하고
낙엽이여
- 이태극 -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 남아 잠기었다.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진다.
낙타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이야기가
- 이문재 -
낙화
꽃이 지기로소니
주렴 밖에 성긴 별이
귀촉도 울음 뒤에
촛불을 꺼야 하리
꽃 지는 그림자
하이얀 미닫이가
묻혀서 사는 이의
아는 이 있을까
꽃이 지는 아침은
낙화 - 이형기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걱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난 - 박목월 -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 이호우 -
벌 나빈 알 리 없는
안으로 다스리는
종이에 물이 스미듯
난파선 - 황윤헌 -
7.불의 변주 ... 기적은 아름다웠다.
노오란 빛을 퍼뜨리는 달이 뜨고
차가운 손에서 불이 부활을 변주하듯 익사한 늙은 수부가 소생하였다는
늙은 비둘기를 추방한 땅
짙은 꽃내 풍기는 도취 속에서
불로 변신하는 마른 잎에 쪼이는 --늙은 수부는 깊은 잠속에 묻혀 버린다.
하얀 꽃가루가
난초(蘭草)
- 정지용 -
난초(蘭草)
1
2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3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4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날참새를 씹으며 - 정양 -
피묻은 입술을 닦아내면서
남강 - 양왕용 -
대나무 숲은
남사당(男寺黨)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우리들의 도구(道具)를 실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남신의주 유동 박시 봉방
남새갈기 - 이은봉 -
하기는 요만치의 농사라도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남해 금산
남행길 - 강인한 -
서울에서 정읍까지
납작 납짝 - 김혜순 -
드문드문 세상을 끊어내어
발바닥도 없이 서성서성
낮달 - 조병화 -
세월이 잃고 간 빚처럼 낮하늘에 달이 한 조각 떨어져있다.
낮달로 슬리며 - 이태수 -
서녘에 슬리는 낮달
낮별 - 김종해 -
아이들을 따라 어린이놀이터에 나왔습니다 새힘은 아홉 살 새별은 일곱 살 그네를 탑니다 이삭은 여섯 살 이솝은 네 살 시소를 탑니다 아이들은 바람을 탑니다 번갈아 이웃동네 하늘까지 날아오릅니다 장마가 끝난 하늘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랗게 낮별 되어 떠오릅니다 철봉에 매달린 나는 떨어질 것 같습니다 아니들은 새처럼 날아와 낮에 떨어지는 별동을 떠받쳐 줍니다 할 - 아 - 버 - 지! 나는 깜짝 놀라 철봉을 더 힘껏 쥡니다
낮잠속 얼굴.11 - 석병호 -
속살이 흔들리는 가을 소리
비에 젖은 숙인 이마엔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 아주머님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언덕을 넘어 황소의 울음 소리도 흘러 오는데
- 이용악 -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느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 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던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 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늑대 - 이윤택 -
빈들 마구 달렸어
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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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는 까닭을 - 배경란 -
내가 우는 까닭을 묻지 말아요 새가 우는 마음을 그가 말을 할까요 그 아유를 어찌 우리가 다 알까요 바이오린의 한 개의 현이 끊어져 음악은 그 악기 속에서 아름답게, 온전히 울지 못합니다 인생의 일도 그러하지요 그런데 인생이 어찌 말로써 이해될까요 이 밤에 깊이 우는 자 그는 삶을, 누구를 깊이 울고 또한 깊이 사랑하지요.
내가 없는 나의 꿈
들것에 실려간 여인
장롱 속의 좀벌레가
오늘도 내 꿈속엔 수천 개의 조약돌
어디에도 내가 없는
- 김주관 -
어젯밤 꿈 속에서
이즈음 사람들은 잊고 있지요
내 꿈속의 나비는 - 박이문 -
내 꿈속의 나비는
내 노동으로 - 신동문 -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이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내님의 사랑은
내 님의 사랑은 철따라 흘러간다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 서정주 -
괜, 찬, 타, ......
울고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내림굿 - 이승하 -
헤매던 넋 하나 돌아오고 있다
고샅을 돌아나오면 꼭 네 생각이 났다
보았다 아무것도 안 보여 팔 휘저으며
내 마음은
내 마음은 촛불이오.
내 마음은 나그네요.
내 마음은 낙엽이요.
- 김영랑 -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내 소녀(少女) - 오일도(吳一島) -
내 소녀 어디 갔느뇨.
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내소사 연가 - 우미자 -
연두빛 목마른 4월
청운암 대숲에 이는
능가산 지네 바위에 올라보면
섬 하나 팔베개 하고
어느 꿈으로 오시나요
등잔불의 심지
상한 갈비뼈
내 아직 적막에 - 김원길 -
미닫이에 푸른 달빛
일어나 빈 방에
내 아직 적막에
버레소리 잦아지는
달 아래 그대 문 앞
그대 뜨락 꽃내음만
달 흐르는 여울길
내 아직 적막에
냄비보살 마하살 - 반칠환 -
처억 이름 모를 냄비가 앉았다 간 검은 궁둥이 자국을 본다 손으로 쓸어보지만 검댕은 묻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고 속이 타도 궁둥 걸음밖에 할 수 없었을 어떤 아낙의 모습 선연하다 눈물 나게 뜨거워 달아났다가도 가슴 시리면 다시 그 불판 그리워 엉덩이부터 들이댔을 서러운 조강지처 평생 끓이느니 제 속이요 쏟느니 제 창자였을 저 아낙의 팔자는 어느 사주에 적혀 있던 걸까 팔만사천 번 찌개를 끓였어도 죄다 남의 입에 떠 넣고 빈 입만 덩그라니 웃었으리라
- 이근배 -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냉이를 캐며 - 민영 -
-귀염이 엄마에게
오늘은 언 땅의
바람은 등에 업은
바람아 불어라
- 구상 -
영원의 동산에다 꽃 피울
젊어서는 보다 육신을 부려왔지만
무엇보다 고독의 망령(亡靈)에 사로잡히거나
고독과 불안은 새로운 차원의
관능적(官能的) 즐거움이 줄어들수록
이제 초목(草木)의 잎새나 꽃처럼
죽음을 넘어 피안(彼岸)에다 피울
노년환각 - 이형기 -
자라서 늙고 싶다
먼 여정이 끝난 곳에
또 어느듯 하루 해가 저물어
눈을 감고 있으면
--그러나 나는
육중한 대지에 묻힌
내 가고난 다음 천년쯤 후에
노동의 새벽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늘어쳐진 육신에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노래 - 김용주 -
사람은 땅에 끼어 있고
내 앞에서는 무슨 일이죠?
노래 - 윤지용 -
우리는 늘 새날 새 아침을 2. 해
새날 새 아침은 3. 산
산은 점잖다. 4. 강
강은 바다보다 넓지 않아서 5. 고향 마을
고향 마을에 다다르면
노래여 노래여 - 이근배 -
푸른 강변에서
그 사공이 심은 비명의 나무와
노부부 - 정호승 -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못 눠서 고민이다 어머니는 관장약을 사러 또 약국에 다녀오신다 내가 저녁을 먹다 말고 두루마리 휴지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안방으로 모시고 가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늙은 팬티를 벗기신다 옆으로 누워야지 바로 누으면 되능교 잔소리를 몇번 늘어놓으시다가 아버지 항문 깊숙이 관장약을 밀어넣으신다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안 나온다고 밥도 안 먹는다 늙으면 밥이 똥이 되지 않고 돌이 될 때가 있다 노인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사촌여동생은 돌이 된 노인들의 똥을 후벼파낼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늙은 뒤에 또다시 늙는다는 것은 밥을 못 먹는 일이 아니라 똥을 못 누는 일이다 아버지는 기어이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다녀오신다 이제 똥 나왔능교 시원한교 아버지는 못내 말이 없으시다 어머니는 굽은 등을 더 굽혀 설거지를 하시다가 너거 아버지 지금 똥 눴단다 못내 기쁘신 표정이다
노을 - 이제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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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 낳으셨지만
나도 자줏빛 한 덩이
노정기(路程記) - 이육사 -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배 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을이 한 구죽죽한 어촌보다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짱크와 같애 소금에 절고 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 가고 전설에 읽어 본 珊瑚島는 구경도 못 하는 그곳은 남십자성이 비춰 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 식물처럼 발목을 에워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인 양 다 삭아 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의 路程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
녹동 묘지에서/김광균
서른 여덟의 서러운 나이 두 손에 쥔 채
논개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흐르는 강물은
농무
너 - 博川 최정순 -
늘 부대끼며 살아도 알지 못하듯 서로간 살길 찾아 무심할 때 나 위해 두 발 포근히 감싸 주었어
긴긴 날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늘 곁에서 위로해 주었지
어느 섬 모퉁이 돌아가거나 산 비탈 억센 길 팍팍하게 오를 때 아무 조건 없이 옆에서 지켜 주었어
흰 백발 서리처럼 내릴 때에도 나 위하여 늙은 몸둥이 된 너였지
눈 시린 아침 파란 편지 빼곡히 쓰고 나는 수줍은 새색씨처럼 반겨했었어.
너 - 이시영 -
불러다오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 이은상 -
오는 아침도 수없이 떠나가는 봇짐들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긴긴 밤 가얏고 소리마냥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무도 슬픈 사실-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 박팔양(朴八陽) -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비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 고
너 없음으로 - 오세영 -
너 없음으로
너로 하여 이 세상 밝아오듯
홀로 있음은 이미
이승의 강변 바람도 많고
흘러 흘러 남는 것은 그리움
홀로 있음으로 이미
너의 겨울 뒤에서 - 김동원 -
너의 분홍빛 가슴에 감추어진
하얀 지체를 뿌리면서,
나는 지금,
너의 시를 읽는 밤엔 - 이기철 -
너의 시를 읽는 밤엔 마을의 불빛 꺼지고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 어느곳에 있느냐...(사랑하는 딸 혜란에게)
- 임화 -
무엇을 생각하며
머리가 절반 흰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아버지는 지금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전선으로 가는 길 역에서
너와집 한 채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토방 밖에서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넋건지기 - 서홍관 -
이렇게 많은 벼들이
들길을 걷노라면
밤이슬을 털고 일어서는
네거리의 순이 - 임화 -
네가 지금 간다면, 어디를 간단 말이냐?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
목을 길게 뽑고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네 번째 별 - 정진규 -
별 밥을 먹으면 별이 될 것이다 무엇이나 만지면 별이 될 것이다 어둠을 만지면 별이 될것이다 별나무,별새,별집,별학교,별나라, 별술, 같은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 별처럼 취하는 것! 별처럼 깨어나는 것! 취해서도 어둠 세상의 빛이 되는 술! 그런 술 공장 주인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먹고 사는 밥은 지금 내가 마시고 사는 술은 질이 좋지 않다 도망만 치게 한다 나는 배가 부르면 부를수록 비겁해진다 나는 취하면 취할수록 가짜가 되고 있다 그렇다 별밥을 먹으면 별술을 마시면 별똥을 쌀 것이다 똥도 쓸만하게 될 것이다 진짜가 될 것이다 그리운 별똥!
님의 침묵
님의 뒷 모습 - 博川 최정순 -
까닭없이 그리운 사람이여 세월 앞에 등 떠밀려도 까닭없이 보고프네 칡넝쿨인가 어울더울 내 몸과 마음으로 파고 들어 찬란한 보석 빛깔 만들었던 눈 부신 그리운 사람아, 흔적 없이 내밀히 물들어 가는 아픈 사랑이었더구나!
님에게 - 김소월 -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 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모를 딴 세상의 네 길거리에 애달피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들에 헤메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 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 업은 베겟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님이 오시는지 - 박문호 -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길 님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내 마음은 외로워 한 없이 떠돌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녘을 지나 달빛 먼길 내님이 오시는가 풀물에 배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꽃향기 헤치고 님이 오시는가 내맘은 떨리어 끝 없이 헤매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바람이 이네.
늙은 새 - 김왕노 -
제 털을 다 뽑아 자식 둥지 다 만들어주어 헐벗고 추운 겨울 새 한 마리 가고 있다. 리어카에 폐휴지며 빈 박스 가득 싣고 길을 역주행하고 있다. 동행하는 것은 빈 박스로 잠깐 포장된 새벽, 리어카에 가듯 실린 폐휴지의 미미한 온기, 그리고 호구지책인 녹슨 리어카 , 역주행하는 저 아찔한 순간들, 늙은 새의 희미한 그림자, 제 털을 다 뽑아주어 살이 다 들어난, 뼈가 앙상한 새 한 마리, 날지 못하는 새 한 마리 길을 역주행 중이다. 마주쳐오는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뜨거운 욕설을 쏟아놓지만 김 오르는 밥 한 그릇이 진수성찬이고, 밥 한 그릇 눈부신 아침이 천국의 시간이므로 그 곳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사업실패로 어디로 간지 모르는 아들, 집 나간 며느리, 뿔뿔이 흩어져간 손자, 근심 걱정 없다는 저승으로 먼저 간 남편의 생각이 밤마다 가슴 깊이 얼음으로 파고들지만 저렇게 살아 있다가 기적같이 다시 털이 자라면, 또 아낌없이 뽑아주어야겠다고 마음 다지는 늙은 새 한 마리, 제 생을 끌고 길을 역주행하고 있다. 털 없는 늙은 새 한 마리 가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렇게 홀로 가고 있다.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 - 강경화 -
서리내린 저 밭의 배추잎 끝에서
늪 - 김춘수 -
늪을 지키고 섰는
소금쟁이같은 것, 물장군같은 것,
산도 운다는
갈대가 가늘게 몸을 흔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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